코로나가 장기화될 것이라는 조짐이 보이던 작년부터 적지 않은 기업이 하이브리드 워크를 시도했다. 우리는 해당 프로젝트에 직접 참여했던 기업을 포함해, 국내외에서 하이브리드 워크를 도입했거나 시범사업 혹은 파일럿 형태로 도입을 시도한 기업들을 분석했는데, 하이브리드 워크 전환에 실패한 이유는 다음 몇 가지로 수렴되는 경향을 보였다.

첫째, 업무방식에 있어 온라인 기반으로 기존의 업무를 재설계하기 보다는, 전통적인 면대면 방식을 기반으로 온라인 업무를 일부 허용하는 수준이었다.
둘째, 사무실 출근일수를 정하는 과정에서 개인의 선호와 사정이 반영될 여지가 적었고, 출근일수에 대한 유연성도 적었다.
셋째, 실질적인 협업을 이끄는 리더의 관심사가 구성원의 정서적인 면보다는 산출물 속도에 집중되어 있었으며, 이런 팀일수록 의미적인 차원에서 구성원 간 연결감이 낮았다.
넷째, 협업 공간으로서의 사무실의 중요성은 알고 있었지만 직원들을 사무실로 이끄는 본질적인 힘에 대한 이해가 짧았다. 이런 조직은 탁구대와 에스프레소 바를 설치하는 데 상당한 시간과 돈을 들였지만, 이런 편의성 때문에 사무실로 출근하는 직원들은 극소 수였다.
마지막으로, 하이브리드 근무의 취지나 로드맵이 메일이나 게시글을 통해 표면적으로만 공유되었다. 이런 경우 직원들은 중요한 변화 과정에서 소외됐다고 느꼈으며, 심지어 변화 자체에 불신을 갖는 직원도 있었다.


그렇다면 하이브리드 워크로의 전환을 고민하는 조직이 고려해야 할 점에는 무엇이 있을까? 위에 언급한 것처럼 다양한 요소가 있지만, 본고에서는 국내 기업에는 여전히 낯선 ‘비동기식’ 업무방식과 ‘개인의 선호’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소개한다.

업무방식 : 하이브리드 근무에서는 비동기식 업무가 효율적이다

커뮤니케이션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메시지를 실시간으로 주고받는 방식을 ‘동기식’이라고 한다. 대면회의, 화상회의, 전화통화가 동기적 방식에 속하는데, 이런 커뮤니케이션은 여러 사람의 의견을 빠르게 수렴해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경우나 감정적으로 민감한 이슈를 다룰 때 유리하다. 반면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의 메시지 전달이 실시간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방식을 ‘비동기식’이라고 부른다. 메모, 카카오톡 메시지, 문자, 이메일, 음성메시지, 스크린 녹화 등이 여기에 속하는데, 가볍지 않은 내용을 많은 사람에게 전달해야 하거나 업무 사이클이 다른 사람들이 커뮤니케이션할 때 유리하다.

두 방식만을 놓고 보면 커뮤니케이션 전달에 시간이 걸리는 비동기식보다는 즉각적으로 내용이 전달되는 동기식이 훨씬 효율적으로 보인다. 실제로 구성원 모두가 사무실에 모여서 일하던 시절에는 대부분의 경우 동기식 커뮤니케이션이 속도도 빠르고 (적어도 업무를 지시하는 입장에서는) 효율적이었다. 하지만 구성원들이 다른 공간에서 일하는 하이브리드 워크나 업무공간에 제약이 없는 리모트 워크에서는 반대다. 동기식 커뮤니케이션이 오히려 비효율적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우리가 사무실에서 일을 할 때는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나와 동시에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제한되어 있었다. 누가 내 자리로 와서 자료를 요청하고 있으면 다른 사람은 그 일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말을 걸었고, 내가 팀미팅에 들어가 있을 땐 내자리로 걸려 온 전화를 받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하이브리드 워크에서는 다르다. 필연적으로 제한된 사람들과만 상호작용하는 사무실 근무와는 달리, 원격 근무를 하게 되면 수많은 사람과 동시에 상호작용을 하게 된다. 화상회의를 하는 동안에도 업무요청 메시지가 끊이지 않고, HR 담당자와 중요한 대화를 나누고 있는 도중에도 보고서 수치를 변경해 달라는 메일이나 메시지가 뜬다. 이런 요청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문제는 이렇게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는 요청에 ‘즉각적으로’ 응답해야 한다는 기대다. 원격 근무에서는 사무실 근무와는 달리 서로의 상태를 모르기 때문에 동시에 업무요청을 받는 경우가 흔하다. 그런데 여기에 모두 실시간으로 응답하려고 하면, 즉 동기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하려고 하면 금세 수많은 메시지에 질식되기 십상이다. 즉시 응답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스트레스가 높아지고, 이런저런 요청에 휘둘리느라 업무시간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기가 어렵다. 진행하던 대화가 자주 중단되면서 대화 자체의 완성도가 낮아지고, 이런 흐름이 오래 지속되면 업무 집중력에도 영향을 끼쳐 팀 전반의 효율이 떨어진다.

이런 불상사를 막으려면, 그동안 실시간으로 대응했던 커뮤니케이션을 비동기식으로 전환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국내 기업에서는 흔히 이메일, 메신저, 문자 등에 즉각적으로 대답하는 것을 미덕이라고 생각하는데, 하이브리드 워크에서는 이런 미덕이 번아웃의 주범이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메일이나 메시지와 같이 기본적으로 시 차가 발생하는 커뮤니케이션에 대해서는 즉시 응답하지 않는 것을 디폴트로 하고, 화상회의나 전화처럼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커뮤니 케이션은 꼭 필요한 경우로 최소화하는 것이 좋다. 이렇게 하면 한 대화가 다른 대화에 의해서 중단되는 일이 적고, 온종일 마무리되지 않은 업무와 요청으로 시달리는 일도 줄어든다. 비동기식 커뮤니케이션은 얼핏 보기에는 느려 보이지만 내용의 충실도가 높다. 그래서 하이브리드 근무를 하는 조직에서 비동기식 커뮤니케이션이 안정적으로 자리 잡으면 장기적으로 생산성이 올라간다.

업무형태 : 업무의 특성과 개인의 선호를 반영해야 한다

하이브리드 워크로 전환하는 국내 기업들은 흔히 원격근무일수를 부서나 팀 단위로 정한다. 기획과 분석 업무가 많은 제품기획 부서는 일주일에 3~4일을 재택으로 일하고, 다른 팀과 협업이 많은 마케팅 부서는 주 4일 이상 사무실에서 일하는 방식이다. 이런 가이드 라인은 물론 유효하다. 업무 자체의 속성과 타 부서와의 협업 정도에 따라 주 업무 공간이 달라지는 경향은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평균’적인 수치일 뿐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내가 담당하는 업무의 특성 못지않게 나의 개인적인 상황이나 경력도 적합한 원격근무 일수에 영향을 미친다. 특히 거주와 가족관계는 업무형태를 선택할 때 매우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보자. 사무실에서 한 시간 떨어진 곳에 거주하는 40대의 필자는 일주일에 최소 3~4일은 원격으로 일하길 원한다. 특히 집안 일을 봐주는 부모님과 같이 살고, 아이가 없으며, 남편은 해외 출장이 잦으며, 사무실에서 제공하는 것보다 높은 사양의 홈오피스를 갖추고 있어서 사무실보다 집에서 생산성이 높다. 이 분야에서 경력도 적지 않고 오래된 네트워크가 많아서 자주 얼굴을 비춰야 하는 단계는 지났다. 다만, 주변에 일이 생기면 외면하기 어려운 성격이다 보니 사무실에서 일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날이면 에너지가 급격하게 소진된다.

반면, 같은 일을 하는 29살의 남자 동료는 상황이 다르다. 그는 사무실이 있는 선정릉 근처에서 또래 직장인들과 오래된 주택에서 코리빙을 하고 있다. 각자의 방이 있지만 크기가 넉넉하지 않고, 공유공간인 거실과 주방에는 항상 자동차 소리가 들려서 장시간 집중하긴 어렵다. 그나마 집중이 좀 된다 싶으면 옆방에서 일하는 프리랜서 번역가가 말을 건다. 그는 이 분야에서 일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아는 사람도 별로 없고, 아직은 모르는 게 많아서 일하다 물어볼 것도 많다. MZ 세대는 원격 근무를 선호한다는 편견과는 달리 그는 일주일에 5일 전부를, 아니 가능하다면 주말에도 사무실에서 일하길 원한다.

이렇게 다른 두 사람이 같은 부서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혹은 주요 업무가 같다는 이유만으로 주 3일의 사무실 근무를 의무로 해야 한다면 어떨까? 원격 근무에 최적화된 필자는 일주일의 반을 스트레스 받으면서 사무실에서 일할 것이고, 출근을 선호하는 29살의 동료 역시 일주일에 이틀을 스트레스 받으면서 집에서 일할 것이다. 회사와 개인,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상황이 ‘평균’ 혹은 ‘공평’이라는 이유 아래 선택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구성원들이 선호하는 업무형태는 어떻게 알아낼 수 있을 까? 방법은 간단하다. 전사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진단용 설문조사와 책임자와의 1:1 면담을 통해 구성원의 선호도를 유의미한 수준으로 파악할 수 있다. 참고로 진단용 설문조사는 하이브리드 근무로 전환하기 전과 후, 두 번에 걸쳐 실시하는데, 전자는 하이브리드 근무의 전사적 로드맵을 짜기 위해, 후자는 부서 차원에서 각 구성 원의 업무형태를 결정하기 위해 활용한다. 이 설문조사에서는 단순히 일주일에 며칠을 출근하고 싶은지만 묻지 않는다. 현재, 양육의 책임이 있는 사람과 동거하고 있는지, 홈오피스가 얼마나 구축되어 있는지, 평균적인 통근시간과 방법은 어떤지, 업무 수행에 있어 코칭이나 어드바이스가 얼마나 필요한지 등 최적의 업무형태를 찾기 위한 전방위적인 질문들이 포함되어 있다.

결언

하이브리드 워크의 목적은 새로운 업무방식으로의 적응, 그 자체다. 스마트워크 디렉터 입장에서 보면, 하이브리드 워크는 업무 시간과 공간을 엄격하게 제한했던 전통적인 사무실 근무가 그 제약을 완전히 없앤 리모트 워크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과도기적 업무형태다. 이 말은 두 가지 의미를 함축한다. 하나는, 하이브리드 워크의 목적은 시/공간의 제약이 사라진 업무방식에 ‘적응’하는 경험그 자체라는 것. 그리고 이 경험은 현재 우리 조직의 업무방식이 어떤가에 따라 매우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하이브리드 워크를 통해 우리 조직과 구성원들이 전보다 더 유연하고 제약이 적은 상황에서 일할 수 있다면, 그것이 그 회사의 올바른 하이브리드 방식이라는 것이다. 일하는 공간이 달라지면 일하는 시간이 달라지고, 일하는 시간이 달라지면 일하는 방식도 달라진다. 그리고 일하는 방식의 다양성을 인정하면 다양한 분야의 인재들이 자연스럽게 몰려든다. 2022년, 하이브리드 워크로 전환하는 대한민국의 모든 기업이 세계의 다양한 인재들을 끌어들이는 장이 되길 바란다.

저작권자 © 월간 인재경영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