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 점심시간이다. 가족들과 외식을 하러 맛집을 검색하고 내비게이션 안내에 따라 이동한다. 랩과 팝을 넘나드는 다양한 음악을 들으며 식당에 도착, 음식이 나올 때까지 실시간 골프 방송을 시청한다. 음식 사진을 SNS에 올리면 음료를 준다는 말에 음식이 나오자마자 사진을 찍었다. 결재는 페이(pay)로 끝. 점심시간에 이 모든 것을 스마트폰 하나로 다 했다.

이제는 편리성의 시대다. 세탁과 건조가 하나의 기계로 되며 냉장고에서 정수된 물과 얼음이 나온다. 에어컨이 공기청정기도 되고 스마트워치가 내 혈압도 알려준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MZ 세대에게는 당연하다. 이 세대가 대세가 되었고 고객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회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슈피겐코리아는 코로나로 일상이 된 재택근무를 시행하며 미리 하이브리드 근무를 준비했다. 특히, 인사팀을 임상실험 조직으로 선정하여 원격 근무의 장단점을 분석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장점은 편하다는 것이다. 편하다는 국어사전에 “1. 몸이나 마음이 거북 하거나 괴롭지 아니하여 좋다. 2. 쉽고 편리하다.”로 표기되어 있다. 직원들은 2번은 공감이 되는데 1번이 해결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리더가 진정성(authenticity)을 가지고 집에서 근무해도 괜찮다고 반복해서 강조했다. KPI 달성을 꼭 해야 한다는 전제조건은 붙었다. 최대 2주 연속 재택근무를 하며 편함에 익숙해졌다. 그 이유가 출퇴근 시간 절약도 물론 있지만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되는 것부터 머리를 감지 않고 일해도 된다는 것까지 리얼하게 속마음을 털어놨다.

재택근무의 단점은 의외로 외롭다는 것이다. 종일 말을 안 하고 가만히 앉아 일하면 답답함을 넘어 외로워진다. 누군가에게 격하게 말을 하고 싶은데 동료가 없고, 잔소리하는 상사가 없다. 누가 채팅으로 말을 걸어주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나의 존재는 남을 통해 알 수 있다. 하지만 리더가 원하는 것은 효율적인 업무 처리와 궁극적 목표 달성이다. 리더는 업무 상황을 바로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불편했다. 전화나 채팅으로 진행을 물어야 했고 의도와는 다르게 계획적으로 변해갔다. 이런 과정을 거쳐 슈피겐코리아의 하이브리드 근무가 만들어졌다.

슈피겐코리아의 하이브리드 운영 목적은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고용 브랜드 확보이다.
우리보다 대략 6개월 먼저 일상으로 복귀한 미국의 최근 이슈는 퇴사다. 그 원인 중 하나는 사무실 복귀 명령이다. 코로나가 빠르게 소환한 재택근무를 지속적으로 유지해야 하는 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다. 과거 2004년도 주 40시간 근무가 시작되고 회사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서로 눈치를 보는 시절이 있었다. 토요일에 정말 출근을 안 해도 되는 건지 선배에게 물어보면 “그걸 내가 어떻게 아냐?”며 줄줄이 회사로 나왔다. 지금의 원격 근무는 그때와 차원이 다르다. 시행하지 않으면 다른 회사에 인재를 빼앗길 판이다. 우수 인재 선발과 회사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 하이브리드 근무는 필수다. 슈피겐코리아 내부적으로도 원격 근무를 하지 못하는 부서의 이슈 등으로 반대의 목소리가 높았지만 미래 인재 확보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는 논리를 이길 수는 없었다. 어차피 해야 할 거면 빠르게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

둘째, 성과관리 방법이다.
“일은 사무실에서 해야 한다”는 귀무가설(null hypothesis)이 코로나로 폐기되었다. 하이브리드 근무의 핵심은 KPI 달성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도록 근무 공간을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목표 달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하이브리드 근무에 대한 관리는 인사팀에서 맡는다. 인사는 직원들이 성과를 달성할 수 있도록 채용과 평가, 보상 등의 제도를 기획하고 직원들의 불만을 줄이는 역할을 한다. 반대로 총무는 직원들이 업무에 몰입할 수 있도록 업무 환경 구축과 복리후생 등을 운영하고 만족도를 높이는 역할을 한다. 소중한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 2시간 일찍 퇴근하는 ‘Give & Take’가 대표적인 복리후생 제도이다. 이와 다르게 하이브리드 근무는 성과관리의 한 방법으로 조직의 목표 달성을 위해 효율적으로 일하는 방식을 제도화한 것이며 인사가 운영한다. 목표 달성에 빨간 불이 켜지고 직원 관리가 어렵다면 사무실 근무로 회귀한다. 리더는 목표 달성의 최종 책임자다. 아무리 하이브리드 근무가 직원들에게 업무 효율성을 주더라도 목표 달성에 효과적이지 않다면 리더는 언제든지 사무실로 직원들을 복귀시킬 수 있다. 한 가지 예로 원격 근무를 검토할 때 ‘워케이션(work+vacation)’을 허용해 줄 것인지가 논의됐다. 결론은 의외로 간단했다. “놀면서 무슨 일을 하냐?”는 것이다. 오히려 문제해결(troubleshooting)을 위해 회사로 4시간 이내에 복귀가 가능한 곳에서 근무를 해야 한다. 하이브리드 근무 유지를 측정하는 방법은 목표 달성 여부이다.

셋째, 자율문화 정착이다.
유명한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 중 최근에 들었던 교훈이 있다. 토끼는 거북이를 의식하고 달렸고 거북이를 따라잡자 중간에 잠을 자는 우를 범했다. 그런데 거북이는 목표를 향해 달렸다. 토끼를 보지 않고 결승점을 바라보고 달리다 보니 승리를 거뒀다는 얘기다. KPI는 연초에 정해졌다. 이제 어떻게 달성해야 하는지만 남았다. 리더의 피드백과 동료의 지성이 필요하면 사무실에 나오면 된다. 집중해야 할 주제가 있고 방해를 받지 않는 공간이 필요하면 사무실이 아니어도 된다.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 자유는 KPI라는 성과를 달성하는 범위 내에서 누릴 수 있다. 세부적으로 직원은 근무일 5일 중 2일의 원격 근무를 할 수 있으며 휴가가 있으면 원격근무일수는 자동으로 줄어들게 된다. 이와 더불어 자율좌석제를 검토 중이다. 평소와 다른 장소에서 다른 업무를 하는 직원과 얘기를 하다 보면 다른 관점을 가지게 된다. 이제 더 이상 사무실에 고정적인 내 좌석이 없다. 장소는 변해도 목표는 남는다.

[슈피겐코리아의 하이브리드 근무 5원칙]
① 직원은 사무실 또는 부서장 승인 장소에서 근무할 수 있다.
② 직원은 부서장과 상시 연락 가능한 상태를 유지한다.
③ 직원은 부서장의 승인 없이 지정된 근무 장소를 변경해서는 안 된다.
④ 회사는 리더와 협의하여 필요 시 직원에게 근무 장소를 직권으로 명할 수 있다.
⑤ 수습 기간은 회사 적응 및 업무 평가를 위해 사무실에서 근무한다.


요즘 골프 치는 사람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신규 입사자에게 “골프 치세요?”라는 질문이 어색하지 않다. 처음 시작한 분들은 한결같이 드라이버는 잘 맞는데, 롱 아이언이 안 된다고 한다. 100타를 깬 분들은 숏 게임이 잘 안 된다고 한다. 보기 플레이어는 장타와 구질 구사를 논한다. 그런데 고수는 다르다. 한 개의 홀이라도 내가 원하는 대로 진행되었을 때 기분이 좋다고 한다. “어떻게 볼을 칠 것인가 보다 어떻게 홀을 공략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진정한 전략가이자 고수다.

이제 하이브리드 근무는 대세가 되었다. 짧은 기간의 운영 결과를 얘기하기보다는 어떻게 전략적으로 활용하여 목표 달성에 기여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이 승자의 조건이 될 것이다. 편리함에 익숙해진 고객은 다시는 불편함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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