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희 교수
김광희 창의력계발연구원장

“내가 하는 건 싫지만, 남이 하면 좋은 거?”
이게 뭘까? 매우 이기적이다. 식탁에서 마주한 대학생 딸은 한 치의 주저함도 없다. “설거지요.” 딸의 답변을 100% 수긍하지만 필자는 내색을 못한다. 옆엔 떨떠름한 표정의 아내가 앉아있다. 관심법을 쓰지 않아도 평소 설거지 스트레스를 앓는 아내 속내는 스캔 완료. 위에 대한 응답은 백인백색이나 필자는 ‘변화(change)’를 꼽는다.
과연 사람은 바뀔 수 있을까? 그렇다. 다만 세 가지로 한정된다. 첫째는 사건·사고 등으로 죽었다 살아난 경우, 둘째는 인생 바닥까지 추락한 경우, 셋째는 삶의 큰 스승을 만난 경우다. 모두 타의적 변화다. 진정한 변화는 아닌 셈이다.

변화의 본질이 뭘까? 내 의지대로 남을 조종하는 게 권력이라면, 내 의지대로 나를 조종하는 게 변화다. 나란 존재가 빠진 변화란 있을 수 없다. 그래 변화는 ‘안에서만 열 수 있는 문(門)’이다. 거울은 나보다 절대 먼저 웃거나 울지 않는다. 상대(거울)에 대한 불평·불만 이전에 나를 바꾸는 게 먼저다. 변화가 지난하고 고통스러운 이유다. 

경영학의 대부로 추앙받는 피터 드러커는 “만약 뭔가 새로운 걸 원한다면, 뭔가 오래된 걸 멈춰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격동기에 가장 큰 위험은 격동이 아니라 어제 논리로 행동하는 거다”고 덧붙였다. 세상과 헤어질 결심이 아니라면 변화 물결을 잘 읽고 대처해 뒤처지지 말라는 조언이다. 실제로 흐름에 어떻게 적응했느냐가 승패를 갈랐다. 포드 자동차의 창업자 헨리 포드의 지적도 드러커의 주장과 맥락이 닿는다. “늘 같은 일을 하고 있으면, 늘 같은 것밖엔 얻을 수 없다.” 백번 지당하다. 새로운 시도 없이 항상 똑같은 일을 하고 있다면, 똑같은 것밖엔 취할 수 없는 게 우리 삶 아니던가! 

‘미친 짓(insanity)’의 개념 정의를 통해 변화의 심오한 가치를 되새긴 이도 있다. 아인슈타인은 “미친 짓이란 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바라는 거다”고 했다. 변화를 망설이고 두려워하는 이들을 향해 아인슈타인은 그렇게 거친 말로 꼬집었다. 치열한 삶 속에서 다른 결과를 원한다면 응당 지금까지와는 다른 일을 해야 옳다. 문제는 머리론 잘 알지만 몸이 완강히 저항한다는 데 있다. 그래 머리와 심장은 지구상에서 가장 먼 구간이다.

현상(現狀)을 변경하겠다고? 이때 떠올리는 중대 결심 몇 가지! “근원적 변화가 필요해.” “원점에서 새로 시작해야지.” 그러다 “단칼에 ◯◯은 어떨까?”와 같은 발칙한 상상도 한다. 종국엔 오래된 걸 순차적으로 폐기하는 쪽으로 대개 결론이 난다. 이마저도 지금껏 해온 걸 멈춰야 하는 까닭에 실천이 녹록지만은 않다. 
불확실성의 소용돌이에서 늘 혜안에 목마른 이들에게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은 유효하다. 

“변화의 비밀은, 모든 에너지를 과거와 싸우는 게 아니라, 새로운 걸 만드는 것에 집중하는 거다.

인생에서 유일한 상수는 변화다. 변하지 않는 건 없다. 있다면 ‘변한다’는 불변의 진리뿐! 내년 일을 얘기하면 귀신이 웃는다는 말처럼 당장 내일 일도 모르는 게 인간사다. 하물며 안개 속 미래를 어찌 관통할 수 있으랴. 허나 예측이 불필요한 진실 하나는, 변화를 꿈꾸지 않는 개인·조직에 지속가능성은 없다는 점! 우린 일상의 우연을 통해 일구는 게 아닌, 지속적 변화라는 필연을 통해 성장한다. 변화는 세끼 밥이고, 텍스트에 쓰여 있지 않은 걸 읽게 해준다. 


글 _ 김광희 창의력계발연구원장 / 협성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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