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인 『디자이너의 접근법; 새로고침』 저자

‘디자인’이란 단어를 들으면 연상되는 수식어를 떠올려봐라. 누구나 자연스럽게 ‘세련된’, ‘고급진’, ‘아름다운’ 같은 외적 표현이 떠오를 것이다. 오래된 관념으로, 여기 그 관념을 깨려는 사람이 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빠른 변화가 진행되고 있는 지금, 세상의 변화에 맞춰 디자인도 트렌디하게, 그러면서도 쓸모있게 디자인해야 더 가치있다고 강조하는 이상인 디자이너와의 인터뷰를 공유한다.

간단히 자기소개를 해달라. 마이크로소프트에서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는 이상인이다. 클라우드 AI부서 내에서 디자인 시스템을 총괄, 관리하는 팀을 이끌고 있는데 클라우드 AI를 활용한 다양한 프로덕트에 디자인 시스템과 브랜딩을 접목하는 업무를 맡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입사 전에는 R/GA, 월마트, 삼성, 딜로이트 등의 기업에서 근무한 바 있다. 특히, 딜로이트에서 4년동안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컨설턴트로 일한 경험은 B2B영역으로 경험을 넓힐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마이크로소프트로 이직하게 계기가 있나. 사실 마이크로소프트는 디자인 직군에게 크게 어필이 되는 회사는 아니었다. 그러나 사티아 나델라가 마이크로소프트의 3대 CEO로 취임한 이후 많은 것이 바뀌었다. 조직문화는 물론이고 이전의 엔지니어링, 비즈니스 중심이었던 프로젝트가 상당 부분 경험 중심의 프로젝트로 바뀌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가 경험 디자인을 하는 내게 매력포인트로 다가오지 않았나 생각한다. 실제 실천과 결과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면서 마이크로소프트 입사를 결정하게 되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일반 디자이너와 완전히 다른 역량이 요구될 것 같은데. 공식적인 직책명은 트랜스폼 디자인 매니저다. 개인적으로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 불리는 것을 좋아하는데 일단 트랜스폼 디자인 매니저라는 명칭은 너무 거창하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디자인적으로 사용자의 경험을 개선시키는 역할과 관리를 같이하다 보니 창의성과 시스템적 접근이 굉장히 중요하다. 어떻게 보면 ‘크리에이티브’와 ‘디렉터’라는 단어가 상충될 수도 있는데 그렇기에 조화가 잘 이루어지도록 돕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점이 다른 디자이너들과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공식명칭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하고 있는 업무를 나타내는 단어라 할 수 있다.  최근 몇 년간 디자이너가 조직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경우가 많다. 과거, 디자이너는 단순히 디자인만 잘 하면 된다는 인식이 많았다. 하지만 최근의 디자이너의 역할은 남들과 다른 발상을 할 수 있는 역량을 크게 요구하고 그 발상의 근거는 니즈에 대한 리서치, 데이터 등을 해석하는 능력에서 나온다. 즉 디자이너는 고객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제대로 파악하고 움직이는 직무라 할 수 있다.  타사와의 경쟁에서 기술이 비등하면 결국 성패를 가리는 것은 차별화된 경험이라 할 수 있는데 디자이너의 발상 역량이 이러한 경험의 차이를 만들 수 있기에 C레벨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지 않나 생각한다.  그간 크고 작은 프로젝트를 많이 진행한 것으로 알고 있다. 작업하며 우선순위를 삼는 원칙이 있나. 프로젝트마다 우선순위가 다르다.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고 할 수 있는데 예를 들어, 브랜딩을 중시하는 프로젝트에서는 ‘어떻게 하면 최대한 복잡성을 덜어낼 수 있을까’에 중점을 두고, 로고를 제작해야 하는 프로젝트라면 반대로 우리의 가치, 지향점 등의 방대한 내용을 ‘어떻게 하면 심플하게 만들며 모두 담아낼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한다. 프로젝트의 특성에 따라 살을 덜어내거나 살을 붙일 필요가 있는데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것은 프로젝트의 목적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디자이너로서 소신이 있다면 말씀 부탁한다. 소신이라 한다면 쓸모 있는 디자인이라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예술과 디자인의 가장 큰 차이점은 의중이라 생각한다. 예술에서는 작가의 의중이 굉장히 중요해 평가의 기준이 되지만 디자인은 아무리 의중이 뛰어나다고 해도 실용성이 없다면 가치가 없다. 때문에 항상 쓸모 있는 디자인을 하려고 노력한다.  고객에게 쓸모 있는, 가치 있는 디자인을 만들기 위해서는 디자이너 스스로 세상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고, 어떠한 기술이 발전하고 있는지 등 트렌드를 살펴야 한다. 특히, 인류 역사상 기술과 데이터의 발전이 요즘처럼 빨랐던 적이 없는데 이 부분을 간과한 채 자신의 생각에 사로잡혀 과거에 매몰된 디자인을 고집한다면 업계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개인적으로도 기술의 변화와 트렌드를 놓치지 않기 위해 항상 관심을 두고 있다. 몇 년 새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고 있는데 현업에서 느끼는 것이 많을 것 같다. 미국은 코로나 이전부터 이미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라는 단어가 키워드가 돼있었고 실제 이를 생존과 직결된 문제라 여기는 기업이 상당히 많았다. 코로나가 이러한 추세를 더욱 가속화한 부분이 있는데 실제 디지털 전환을 준비하지 않았던 기업과 준비해 왔던 기업의 격차가 벌어지는 상황에서 더욱 이 분야에 집중하는 기업이 더 많아지고 있는 듯하다.  이러한 면에서 마이크로소프트는 완벽한 생태계를 구축한 회사라 볼 수 있다. 디지털 전환을 위해서는 B2B사업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데 마이크로소프트는 이미 오래전부터 B2B사업에서 뛰어난 성과를 보여왔다. ‘Windows’, ‘Office’를 사용하지 않는 기업은 찾기 어려울 정도이고 코로나 상황 속에서 ‘Teams’ 또한 많은 기업의 핵심 툴이 되고 있다. 개인적으로 기술의 중심에 서있는 기업의 일원으로서 자긍심을 느낀다.

『디자이너의 접근법; 새로고침』을 출간했다. 책 소개를 해달라. 크게 세 가지 주제로 나뉘는데 작금에 대한 디지털 업계의 시각, 디자인 업계의 시각, 그리고 글로벌 스탠다드가 되는 디자인을 어떤 접근법으로 제작할 것인가에 대해 담고 있다. 특히, 마지막 장은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일하면서 그동안 개인적으로 정리했던 생각들을 모은 것인데 필자인 내가 어떻게 팀을 만들고, 운영하고, 확장했는지에 대한 접근법이 소개돼 있다. 요점은 디자이너가 더 인정받고 C레벨까지 오르려면 생각하고 연결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미적으로 훌륭한 디자인을 만들려고 하다 보니 정작 미보다 중요한 ‘왜’가 빠져 있다. 결국 양질의 디자인은 단순히 디자이너 개인의 영감과 역량에 의해 탄생하는 것이 아닌 잘 갖춰진 프로세스와 끊임없는 생각을 통해 만들어진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책 속 내용 가운데 독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머리말에 미식과 디자인을 비교한 글이 있다. 처음에 미식은 단지 궁중요리사의 음식을 화려하게 차려 입고 먹는 것을 의미했다. 후에 어느 프랑스 요리사가 코스요리로 체계화하고 나서야 전 세계에 영향을 주는 식문화로 발전할 수 있었는데 디자인도 이와 마찬가지다. 뛰어난 디자이너들이 많지만 그들이 사라지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디자인도 미식처럼 체계화한다면 역량이 부족한 사람이 더 발전하고 재능 있는 사람이 더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디자인 감각이 뛰어난 몇 명보다 전체적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고 발전시킬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을 하는 게 업계 발전에 더 중요하다. 그간 여러 프로젝트 가운데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를 꼽는다면. 월마트에서 디지털 전환 프로젝트를 진행했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커머스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온라인과 오프라인 두 곳 모두 놓칠 수 없었는데 오프라인에서는 월마트, 온라인에서는 아마존이 최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었다. 중간지점에서 서로 경쟁했던 것이 지금까지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R/GA에서 작업했던 뮤직 앱 디자인도 기억에 남는다. 당시 주니어 시절로 하고싶은 작업에 모두 참여할 수는 없었지만 UI, 비주얼 디자인을 맡으며 많이 성장했다. 실제 성과도 뒤따랐는데 이때 디자인한 뮤직 앱이 최초로 디자인이 잘된 뮤직 앱이라는 평가를 받았었다. 후에 이 뮤직 앱은 미국 최대 음악 앱인 ‘스포티파이’ 전체 디자인 헤드가 됐고 더 나아가 애플뮤직의 뼈대가 됐다. 최근 프로젝트로는 마이크로소프트의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 ‘Azure’의 로고 디자인이 특별한데 Azure는 전 세계 클라우드 시장의 24%를 담당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수억 명 이상의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프로그램의 로고 디자인을 했다는 사실이 큰 보람을 느끼고 있다. 후배 디자이너에게 조언을 한다면. 스스로의 한계치를 끌어올렸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한국 대학 커리큘럼은 분야가 굉장히 세분화되어 있는데 개인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결국 일이라는 것은 본인이 판단하고 사회에 나가서도 후에 충분히 바뀔 수 있다. 따라서 관심이 가는 분야가 있다면 최대한 많이 경험을 해보고 진로를 결정하라고 주문하고 싶다. 인생의 멘토를 이야기한다면. 한 사람을 꼽는다면 아버지이다. 아버지가 주방 식기 사업을 30년 넘게 했는데 제품 계발부터 디자인까지 직접 했다. 공부를 하지 않았는데도 디자인상까지 받을 정도로 감각이 뛰어났는데 이런 아버지의 품에서 성장하며 디자인에 대한 감각을 얻었고 많은 조언도 받았다. 지금의 디자이너 이상인이 될 수 있게 해준 길잡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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