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훈 일러스트레이터

한번 보고 이내 다시 보게 되는 그림이 있다. 독특해서, 색이 강렬해서가 아니라 그림이 던져주는 질문이 있어서다. 많은 사람이 이러한 비범함을 천재성이라고 입 모으지만 그 이면에는 작가의 축적된 경험과 꾸준한 노력이 담겨 있다.
“좋은 그림이란 보는 이들에게 질문을 던져줄 수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이강훈 일러스트레이터와의 만남을 들여다본다.

일러스트레이터로 왕성히 활동 중이다. 먼저, 걸어온 지난 발자취를 전한다면.

시사 주간지 <한겨레21>의 일러스트를 시작으로 각종 월간지, 주간지, 일간지의 일러스트 작업을 해왔다. 몰아치는 작업량과 마감을 지켜야 한다는 압박감에 지칠 때가 많았는데, 결국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한 지 3년이 지난 시점에 번아웃이 찾아왔다. 한겨레21를 제외한 모든 잡지사의 작업을 멈추고 1년동안 마음에 여유를 찾아 여행을 떠났다. 여행을 다녀온 이후로는 가급적이면 단편 작업 위주로 작품활동을 하고 있으며 현재는 개인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일러스트레이터가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다. 어릴 때부터 워낙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해 종이와 연필이 보이기만 하면 습작을 반복했는데 이런 평범한 일상이 쌓여 지금의 내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학창시절에 잠시 그림을 포기해야 했던 순간이 있었는데 미대 진학에 대한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었다. 스스로도 부모님의 의견을 수용해 학업으로 방향을 선회했지만 대학에 가야 할 시점이 다가오니 미대에 대한 열망이 더욱 커졌다. 결국 일년 정도의 시위 끝에 부모님의 허락을 얻어냈다. 그러나 막상 미대에 들어가서는 미술보다 연극에 더 빠지게 됐다. 연극 동아리에서 오디션까지 볼 정도였는데, 다른 사람과 계속해서 부대껴야 하는 게 적성에 맞지 않아 얼마가지 못해 접게 됐다. 내 적성에 맞는 일, 평생 해도 후회 없는 일을 생각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림 밖에 남지 않았다. 

그간 여러 매체와 작업한 것으로 알고 있다. 기억에 남는 매체 혹은 작품을 이야기한다면.

시사주간지 <한겨레21>이 아닐까 싶다. 한겨레21은 내 이름 옆에 일러스트레이터라는 명함을 붙여준 첫 매체이면서 동시에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발판을 마련해준 매체다. 
『라틴 소울』이라는 박창학 작사가의 책 작업에 함께한 것도 기억에 남는데, 남미 음악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루는 책으로 개인적으로 남미 음악을 좋아하다 보니 일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좋아하는 취미를 배우는 것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임했던 기억이 있다.
최근에 작업했던 『한국괴물백과』도 뽑고 싶은데 블로그를 통해 곽재식 작가의 글을 자주 접했었다. 팬으로서 그의 원고를 맡게 되었는데 설레는 마음으로 구상부터 마무리 작업까지 8개월에 걸쳐 매달린 작품이다.

일러스트 업계도 경쟁이 치열한 것으로 알고 있다. 오랜 기간 활동할 수 있는 본인만의 경쟁력은 무엇인지.

함께 작업하는 편집자와 기자들에게 “텍스트를 가장 잘 이해하고 가장 잘 풀어내는 일러스트레이터”란 말을 자주 듣는다. 텍스트에 대한 이해는 일러스트레이터가 지녀야 할 기본적인 자질인데, 아무래도 책 읽기를 즐기다 보니 자연스레 행간의 포인트를 쉽게 파악하지 않나 싶다. 또한 작업할 때 단순히 그림을 예쁘게 그리기보다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그 이야기를 가장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그림은 어떤 형태인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는데 이러한 노력도 한몫 한 것 같다.

작업하며 중점을 두는 부분은.

한번 보고 이내 다시 눈길을 돌리게 만드는 인상적인 그림을 그리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재미 요소도 빼놓을 수 없는데 그림에 담긴 내용이 슬프든, 무섭든지 간에 재미있는 요소를 넣어 보는 이들로 하여금 해학을 던져줄 수 있는 그림이 되도록 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이러한 작품이 되기 위해서는 결국 수없이 고민하는 수밖에 없는데 선을 어떻게 쓰는지, 색을 어떻게 쓰는지, 어떤 요소를 집어넣는지에 따라 느낌이 순식간에 달라지는 게 그림이기 때문이다.

작품에 노란색이 자주 보인다.

처음에는 의도적으로 사용했지만 이제는 자연스럽게 손이 가는 것 같다. 일러스트레이터 초창기 시절, RGB와 CMYK에 대해 잘 모르던 상태에서 인쇄물을 출력했던 적이 있다. 원하는 색과 달리 칙칙한 노란색이 뽑혔는데 이때 굉장히 불편한 느낌을 받았었다. 하지만 계속 보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불편한 감정을 오히려 즐기게 되었다. 이 경험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며 노란색은 따뜻하고 편안한 느낌을 준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싶어 노란색을 자주 사용하는 것으로, 이제는 일러스트레이터 이강훈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색이 됐다.

1일 1그림을 SNS에 올리는 데일리 드로잉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생계를 위한 상업적 그림만 그리다 보니 어느 순간엔 그림을 그려도 전혀 즐겁지가 않았다. ‘과연 내가 예전처럼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란 의문이 들 정도였는데, 그러다 고민 끝에 나온 해결책이 데일리 드로잉 프로젝트다. 말 그대로 하루에 한 편씩 그림을 그려 SNS에 업로드하는 것으로, 어린시절 그림 그리며 놀던 기억을 되살려 작업하다 보니 다시 그림에 대한 재미를 찾게 됐다. 또한 독자들로부터 받는 실시간 피드백도 생각하지 못한 신선한 자극이 되어 그림에 대한 의지를 더 확고히 하게 되는 것 같다. 
작업할 때는 보통 카페에 앉아 즉흥적으로 그림을 그린다. 손이 가는 대로, 마음이 이끄는 대로 작업하고 있는데, 이렇다 보니 결과물에 스스로 놀랄 때도 많다. 창작자로서 새로운 방식을 계속해서 시도하고 있는데, 최근에는 특정한 톤을 정해 두고 그 색깔만 써서 그림을 그려보고 있기도 하다.

작가로서 ‘좋은 그림’에 대한 정의를 내린다면.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그림이 좋은 그림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림을 마주한 이들에게 자연스럽게 질문을 던지고, 고민하게 하는 그림이 지금 세상에 필요한 그림이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많은 사람에게 공감 받을 만한 질문이여야 하겠지만 말이다. 

앞에 서두에서 번아웃을 이야기했는데, 슬럼프나 스트레스 어떻게 극복하나.

슬럼프는 정기적으로 찾아오는 감기 같은 것이라 그냥 받아들인다. 감기도 시간이 지나면 결국 나아지는 것처럼 슬럼프도 시간이 지나면 이내 수그러든다.
스트레스는 슬럼프와는 다른데 개인적으로 스트레스가 극심한 날에는 계속 일을 잡고 있기보다 의도적으로 다른 활동을 한다. 운동을 좋아하는 편으로 밖에 나가 땀 흘리다 보면 이전의 부정적인 기분은 사라진다. 

이제는 많은 이들의 롤모델이다. 디자인 분야로의 취업을 원하는 이들에게 조언한다면.

경험보다 앞서는 지혜는 없다고 한다. 최대한 많은 것들을 경험하고 그 안에서 많이 느껴보기를 권한다. 젊은 날 다양한 경험을 하고 나면 그게 삶의 경험치로 축적되어 나중에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의 가치를 더욱 높여줄 것이다. 
덧붙여, 돈이 되는 일에 매달리기보다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내가 남들보다 잘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냉정한 고민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돈을 벌기 위한 고민을 하는 것도 당연히 중요하다. 다만 그것이 삶에서 가장 중요한 목표가 되지 않으면 좋을 것 같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덧붙여, 건강을 꼭 챙기라 말하고 싶다. 

생애 마지막으로 그림을 그려야 한다면 어떤 그림을 그릴 것인가.

그림을 밥벌이로 삼고 10여년이 지난 시점, 그림 그리는 일에 대한 회의가 들어 혼자 태국여행을 갔다. 누군가 돈을 주지 않으면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되어버린 나을 보며 굉장히 힘들어하던 시기였는데 방콕의 어느 박물관 앞에서 한 백인 소녀가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보았다. 순간 계시라도 받은 듯 저 소녀를 그리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 바로 숙소로 돌아가 소녀를 그리기 시작했다. 평범한 낙서에 불과한 그림이지만 그것이 데일리 드로잉 작업의 시작이기에 나에게 상징적인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어린 시절 본능적으로 연필을 쥐었던 그때의 감각을 회복한 순간이었으며 이후로도 그림을 계속 그릴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생긴 순간이었다. 생애 마지막 순간 한 장의 그림을 그려야 한다면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그 소녀를 다시 그려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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