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명섭 (주)트리피 대표이사]

“인사 업무를 하고 싶어요!”
젊은 새내기들 진로 상담을 하거나 신입사원 채용 면접 시에 종종 듣는 발언이다. 그러면 필자는 복잡한 심경이 되어 웃으면서, “인사업무는 ‘노잼’인데 왜 하려고 해요?” 하고 되묻곤 한다. 대답을 들어보면 인사에 대해서(때로는 HR, 인적자원관리 등과 같은 표현도 쓴다) 어마어마하게 스케일이 큰 기대 내지는 오해를 하는 분부터 나름대로 숭고한 사명을 가진 분, 매우 전략적이면서 창의적인 분까지 가지각색이다.  

만약 시간이 충분하다면 그분들에게는 다음의 이야기를 해 주고 싶다. 교과서나 인터넷 등 그 어디에도 잘 나오지 않는, 필자가 인사업무를 하기 전엔 잘 몰랐던 사실들을 말이다. 

(다음에 언급할 내용은 in-house 인사담당자이다. 같은 인사 분야를 다루지만 컨설팅, 채용대행, 헤드헌팅, 인재파견과 같은 HR 전문 사업영역과는 많이 다르다. 같은 축구를 다루지만 필드에서 공을 차는 축구선수와, 그들을 코칭하고 리드하는 감독이 완전이 다른 직업인 것처럼 구분될 수밖에 없다.)

1. 당신은 주인공이 아니에요!
일반적으로 회사에서 인사는 ‘지원부서’ 또는 ‘스텝부서’라고도 한다. 필자가 대표로 있는 회사처럼 HR 자체를 콘텐츠로 해서 사업을 벌이는, 이른바 컨설팅 회사의 경우가 아니라면, 일반적으로 그 회사의 다양한 직무수행자를 ‘지원하는’ 업무를 하게 된다. 그 회사의 사업에 직결된 내 고유의 업무 대신, 직원들을 채용하고, 교육을 하고, 급여를 지급하고, 조직관리를 하고, 퇴직처리를 해 주는 일이다. 그래서 ‘나’를 먼저 생각하기보다는 ‘회사 구성원’들을 먼저 배려해야 한다.

따라서 회사에서 인사적으로 줄 수 있는 혜택인 포상, 교육, 평가보상, 승진 등의 기회에 있어서 인사담당자는 자신을 최우선에 두긴 쉽지 않다. 또한 조직 내에서 주목받는 스타(?)가 되고 싶거나, 남들보다 먼저 발탁승진이라도 해서 경쟁에서 앞서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성향이라면 많이 아쉬울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서비스 마인드를 갖고 다른 사람들을 살피고 챙겨주는 것을 선호하는 이들이 인사업무에 잘 맞을 수 있다. 특히 시대가 변화함에 따라 인사상의 의사결정 역시 과거의 ‘군림하는 인사’가 아닌 ‘현장 중심의 인사’가 대세가 되고 있다. 필자가 인사담당자를 대상으로 하는 교육이나 세미나에 참석해 보면, 과거 신입사원 시절에는 인사담당자들이 거의 모두 남성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여성의 비율이 점차 느는 추세다. 또한 전공도 이전에는 법학, 행정학, 경영학 출신 일색이었다면 지금은 심리, 상담을 포함하여 이공계까지 다양한 전공자들이 인사담당자로 근무하고 있다.

2. 천천히 천천히, 서두를 필요 없어요!
지금은 분초를 다투는 스피드 시대! 그러나 인사는 조금 다르다. 특히 인사제도 개선 같은 경우, 지나치게 속도를 낼 필요가 없다. 새로운 제품의 출시나, 마케팅기법의 적용 같은 경우는 신속할수록 타사 대비 경쟁력을 가지게 되지만, 인사의 경우는 그 대상이 임직원들이기 때문에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걸릴뿐더러, 대개 사람들은 변화를 선호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아직 검증이 되지 않은 최신 HR 기법이나 조직관리, 평가 시스템 같은 것들도 역시 시급하게 도입을 할 이유는 없다. 굳이 서두르지 않아도 당장에 회사의 경쟁력이 떨어지진 않는다. 오히려 다른 회사에 도입이 되는 것을 유심히 관찰하고, 그 회사 직원들의 반응이나 효과를 충분히 관찰한 뒤 천천히 해도 늦지 않다. 지나치게 서두르게 되면 임직원들이 대혼란에 빠져 자신들의 업무에 집중할 수 없게 된다. 특히 인사분야는 한번 제도를 손보면 다시 돌리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에 실행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인사담당자가 너무 부지런하면 직원들이 고생한다.” 농담처럼 회자되는 말이다. 제도개선도 그렇지만, 인사발령이나 채용도 지나치게 빈도가 늘어나면 그만큼 조직이 받는 피로도도 증가한다. ‘정기’라는 이름을 붙여서 정기인사, 정기승진, 정기채용처럼 예측가능한 일정을 정해두고 하는 것을 권한다.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인사 결정이어야 임직원들도 혼란없이 인사상 이슈를 받아들이게 되고 본업에 충실할 수 있다.

3. 통신보안? 아니 ‘인사보안’의 두 얼굴
‘인사담당자는 보안이 생명’이라는 말이 있다. 기업의 조직문화에 따라 다르지만 아무래도 인사발령이나 승진, 조직개편 등과 같이 중요한 내용이 공식발표 전에 조직 내에 떠도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러한 이유로 과거에는 그러한 작업을 호텔방 같은 밀실에서 소수가 모여 행하기도 했다.

또한 인사담당자는 업무수행을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임직원들의 개인정보를 알 수밖에 없는데, 그러한 사안 역시 타인에게 발설하는 것은 금물이다. 따라서 인사담당자의 무거운 입은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자세이다.

하지만 내부 보안이 중요한 앞서 언급한 인사 관련 사안들, 그리고 우리 회사의 인사제도나 정책 관련 내용 등은 오히려 회사 밖으로 나가게 되면 의미가 약해진다. 영업비밀이나 핵심 기술 유출로 인한 타격을 막기 위해 보완 시스템을 더욱 강화하는 것과 비교되는 부분이다.

승진, 발령 같은 인사 관련 보안은 다른 회사에서는 아무 의미도 없고, 인사제도, 정책 등도 금방 가져와서 적용하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타사에서 우리 회사의 인사제도를 안다 해도 큰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인사하는 사람들 간에는 적극적으로 정보를 교환함으로써 서로에게 도움을 주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는 시장에서 서로 원수로 으르렁거리는 경쟁사 사이에서도 인사담당자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친목 모임을 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4. 일하다 보면 보수적인 사람이 된다?
업의 특성상 ‘마케팅 담당자’라고 하면 트렌디하고, 창의적이고, 톡톡 튀는 이미지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재무담당자는 꼼꼼하고 숫자에 강하며 철두철미한 이미지, 영업사원은 붙임성이 좋고 활달하고 적극적인 인물상으로 대표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렇다면 인사담당자는? 아무래도 규정과 원칙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다소 보수적인 성격을 띤다. 인사와 관련한 의사결정 역시 빠르게, 쉽게 하기보다는 신중할 수밖에 없다. 다른 임직원들에게 끼치는 영향이 크고 실수가 발생하면 다시 주워담기 어려운 데다, 이미 그러한 크고 작은 전례들이 있기 때문에 상당히 조심스럽게 업무에 임하게 된다. 단적인 예로, 채용 관련 사고는 최근 들어서는 공정성 이슈와 결부되고 있고, 심지어 범법행위가 될 수도 있다.

따라서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성향을 가진 인물이 인사업무를 하다 보면 본인 스스로가 답답함을 느낄 수도 있다. 본인의 성향과 관계없이 업무의 특성이 그렇게 놔두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처음에는 발랄했던 신입 인사담당자들이, 직급이 올라가면서 과묵하고 재미없어지는 인사 리더가 되어버리는 사례가 많다.

5. 정답이 없고 모범답안만 있다?
인사담당자는 인공지능(AI)이 가장 대체하기 어려운 직업이지 아닐까 싶다. 물론 AI를 통해서 데이터를 분석한다든지, 루틴한 발령작업이나 급여작업 같은 부분에는 적용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인사상의 최종 판단은 반드시 사람이 해야 한다.

그리고 인사업무는 규정과 원칙에 입각해서 수행하는 것이 맞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여러 복잡한 환경과 상황을 고려해서 때로는 기존과는 완전히 다른 의사결정을 해야 할 때가 있다. 그래서 인사업무는 모호한 면이 있으며, ‘정답’이 없고 ‘모범답안’만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기업의 업태, 문화에 따라서도 인사업무는 매우 다르다. 현장 중심의 직무기반, 서구식의 인사를 하는 곳에서 HR은 충실한 서비스 제공자, 혹은 조언자의 역할만 수행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대기업이나 공기업의 경우는 아직도 인사가 상당한 권한과 책임을 가지고 조직을 리드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필자가 여러 고객사를 상대하면서, 직무조사를 위해 여러 기업의 JOB 인터뷰를 하며 느끼는 것이지만 기업마다 가장 다양한 면모를 가지고 수행하는 직무 중의 하나가 인사인 것 같다.

6. 아는 사람이 많아진다!
업의 특성상 책상에서만 인사업무를 수행하기는 힘들다. 다뤄야 할 대상이 ‘사람’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을 만날 수밖에 없다. 오랜 기간 인사 업무를 하면서 사람에 대한 관심이 없는 인사담당자들을 몇몇 목격했는데, 아무래도 본인의 업무에 만족을 못 하는 모습을 보였으며 힘들어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일단 인사업무를 하다 보면, 그들을 채용하면서, 교육하면서, 평가, 승진 작업을 하면서, 급여작업을 하면서 일반 직원들보다는 훨씬 많은 인물을 알게 된다. 그리고 사람에 대한 나름의 판단기준을 가지고 업무를 수행하게 되며 그것이 점점 쌓여서 사람을 보는 눈도 자연스럽게 갖게 된다.

과거 인사(노무)담당자들은 회식자리, 결혼식, 상갓집에 직접 참여하면서 인사 데이터상의 사람들을 실제로 알기 위해서 노력도 많이 했다. 그래서인지 아주 오래전 인사담당자의 첫 번째 요건이 ‘높은 주량’인 적도 있었다. 물론 지금은 옛이야기가 되었지만, 사람에 대한 관심과 판단기준을 쌓게 되는 것은 인사담당자에게 주어지는 큰 혜택이다.

지금까지 필자가 인사업무를 하면서 느꼈던 점을 지극히 주관적으로 정리해 보았다.

다른 배경을 가지고 계신 인사전문가가 보신다면 이견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진지하게 자신의 진로를 고민하는 분이라면 약간의 참고가 되지 않았을까 한다.

서두에 필자가 ‘노잼’이라고 표현했던 것은 물론 애정 어린 농담이다. 인사업무는 타 직무와 비교해서 인생 전반에 걸쳐서도 상당히 배울 점, 장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특별히 대단한 능력이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성실하게 업무를 수행하다 보면 인간적으로나 경영적으로나 많은 성장을 가져올 수 있는 훌륭한 직무이다.

또한 나보다는 우리 회사 임직원들을 먼저 배려해서 그들을 도와서 더 큰 성과를 낼 수 있는 ‘서번트 리더십’이 잘 발휘되는 숭고한 면도 있다. 앞으로도 많은 훌륭한 인재들이 인사업무에 도전하길 희망한다. 

 


글_엄명섭 (주)트피리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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