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의 유연성과 디지털화, 그리고 데이터 HR의 시작

바이러스의 V가 몰고 온 V-nomics의 장기화와 일상화는 일터의 모습을 바꾸고 있다. 통계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80% 가까운 직장인이 코로나 이후 재택근무를 포함한 원격근무와 화상회의를 처음 경험했다. 주52시간 근무의 정착과 함께 시작된 일터의 유연성은 시간에서 공간으로 확대되고 있다.

근무환경의 변화는 필연적으로 디지털 기술의 필요를 촉진한다. 단순히 원격을 통한 접근 편의성을 넘어, 일의 과정과 결과 전반을 기술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인프라가 요구된다. 일터의 구성원인 사람들은 동시에 경제주체로서의 소비자이다. 코로나 이후 e-commerce를 통한 소비는 국가별로 2~5배 증가했다. 비대면 경제에서 온라인과 애플리케이션, 플랫폼을 통한 경제활동을 집중적으로 경험한 구성원들에게 일터의 디지털 지체는 직원 경험의 지체로 이어진다.

일터의 시공간적 유연성과 디지털 업무환경 하에서 HR은 새로운 도전에 직면한다. 생산성이 나아지거나 최소한 유지되고 있는가에 대한 의구심이다. 이 도전에 대한 답은 데이터에 있다. 그간 HR은 데이터 기반 인사를 명확히 정의하지 못했다. 데이터 자체가 빈약했기 때문이다. 일터의 다양성은 필연적으로 그간 접근하지 못했던 데이터의 다양성을 제공해 줄 것이다. 

인재에 대한 다른 시선, 그리고 세대화와 개인화 HR

일터의 인프라가 변화하는 것과 동시에 인재에 대한 정의와 관리방식 또한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기업들은 위축되었던 사업환경을 극복하고 새로운 변화를 시도할 때마다 인재들을 다시 고용하지만, 반드시 동일한 사람들은 아니다. 같은 과업이라도 다른 역량과 기술을 통해 해결하길 기대하고, 이에 적합한 인재를 탐색한다. 내부 인재의 리스킬링(re-skilling), 업스킬링(up-skilling), 직무크래프트(job craft)와 같은 시도도 본격화될 것이다.

자동차, 바이오, IT 분야와 같이 산업생태계의 전환이 급격히 진행되는 영역에서는 인재 포트폴리오 자체의 재구성이 요구된다. 인재군이 동일하다 하더라도 물리적인 대면 관계를 기반으로 한 역량들이 대체될 필요가 있다. 디지털 이해를 기반으로 협업하고 소통하며 영향력을 행사하는 ‘관계 맺음’ 역량, 그리고 낯섦에 맞서 스스로 균형을 유지하는 정서적 지능과 같은 일종의 소프트 스킬에 주목해야 한다. 

이를 가속하는 것은 밀레니얼과 젠지(Gen Z)로 대표되는 세대 변화이다. 디지털 친화적인 것은 물론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기대보다 현재의 보상을 중시하고, 그린슈머, 미닝아웃과 같이 자신의 가치와 신념에 부합하는 것에 높은 충성도를 보인다고 ‘알려진’ 새로운 세대를 포용하는 HR 정책은 필수조건이 되었다. 사회적 파장이 컸던 몇몇 사례로 대변되듯, 평가와 보상제도의 레거시는 지속적인 도전에 직면할 것이다.

인재에 대한 재정의와 세대화 등은 개인맞춤형 HR로 귀결된다. 직무특성에 따른 맞춤화, 세대와 역할그룹에 따른 맞춤화, 현장 재량 확대를 통한 개별 구성원의 유연한 관리 등이 모두 이러한 방향과 결부되어 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의 핵심인 리더십에 대한 관심은 지속될 것이다. 과거로부터 쌓아온 성공스토리와 일에 대한 관점, 사용하는 언어와 기술에 대한 이해 등이 새로운 변화와 융합하고 충돌하는 과정을 모니터하고 개입할 수 있는 HR 액션이 필요하다. 

다시 민첩성과 회복력, 그러나 속도가 달라졌다

올 하반기의 HR 키워드를 인프라 측면의 디지털화, 일터의 시공간 유연성, 데이터 활용 강화, 그리고 제도적 차원에서 인재 재정의, 세대화와 개인화 이슈에 초점을 맞추는 것으로 요약해 보았다. 사실 이러한 전망의 일부 또는 전부는 매년 들어왔고, 몇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아도 큰 틀에서 유사하다. ‘뉴노멀(New Normal)’의 새로움이 이제는 더 이상 새롭지 않은 것이 되어, 한 걸음 나아간 ‘넥스트노멀(Next Normal)’이라는 용어가 등장하는 시대이지만 맥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른 것이 있다면 ‘속도’이다. 역량과 자원이 준비될수록 속도는 빨라진다. 이 조건이 동일하다면 속도를 결정하는 것은 ‘필요’이다. 특히 생존과 직결되는 절박한 필요를 체감할수록 가속도가 붙는다. 욕구에 의한 변화보다 필요에 의한 변화가 빠르다. 올해 하반기는 물론 이후에 지속될 HR 트렌드의 상당수는 이미 이전부터 일어나고 있었지만, 코로나19로 인해 가속화되고 있으며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크게 바뀌고 있다는 점이 더 큰 변화를 이끌고 있다.

클라우스 슈밥은 그 유명한 저서, 4차 산업혁명에서 이전의 연장선에서 벗어난 변화의 근거로 세 가지를 지적했다. 속도(Velocity), 범위와 깊이(Breadth and Depth), 시스템적 격(System Impact)이 그것이다. 변화가 선형이 아닌 기하급수적으로 전개 중이고, 유례없는 폭과 깊이의 패러다임 전환에 직면할 것이며, 기업과 산업 나아가 사회 전체 시스템의 변화를 수반한다고 예측했다. 현재는 물론 앞으로의 전망에 부합해 보이는 이 지적은 이미 5년 전의 것이며, 팬데믹과 같은 충격은 예측 범위에 존재하지도 않았다.

지난 금융위기와 재정위기 당시에도 경험했지만, 더 이상 계산된 위험 또는 회피가능한 위험의 예측만으로 경쟁력을 담보할 수 없다. 글로벌 공급망이 한순간에 무력화되듯, 그간 HR 표준이라고 믿어왔던 것들의 근간을 바꾸어야 한다. 따라서 조직체질의 화두는 다시금 민첩성과 회복력에 집중될 것이다. 하지만 그 속도는 어느 때보다 빨라져야 한다.

속도에 연결성을 결합하라

팬데믹 이후 원격근무와 같은 새로운 일터의 환경이 직원들의 생산성을 향상 또는 유지시키는가에 대한 응답은 조금씩 상반된 결과를 보여준다. 영국의 조사기관인 Statistica는 73%의 응답자가 더 효율적으로 느끼고 있다는 결과를 발표한 반면, The Manifest와 같은 조사기관의 설문에서는 응답자의 30%만이 생산성이 나아졌다는 결과를 보고했다. 많은 전문가는 이러한 차이를 디지털 혁신의 노력과 준비도에서 발견하고 있다. 그간 협업과 성과를 관리하는 디지털 도구를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우선시했던 조직은, 업무환경의 급격한 변화를 쉽게 받아들이고 더 나은 성과를 거두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규제와 보안 등에 엄격한 공공과 금융 산업의 분야에서 일반적으로 근무 전환 시 생산성 유지에 어려움을 겪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투자된 인프라의 격차를 한순간에 극복할 수는 없다. 따라서 이미 추진하거나 계획 중인 각 기업의 맞춤형 HR 인프라 구축은 하반기에 더욱 가속화할 필요가 있다. 이와 더불어 변화의 속도 차이를 효과적으로 보완하기 위해 디지털 도구의 연결성 강화를 전략적으로 선택할 필요가 있다. 협업, 소통, 성과관리, 근태/급여관리, 화상회의 등 특정 목적에 특화된 전문 클라우드 플랫폼, 일종의 카테고리 킬러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이를 연결하는 것이다. 기업이 옴니채널(omnichannel)을 활용하여 고객의 온오프라인 소비경험을 극대화하듯, 새로운 일터의 환경에 최적화된 도구들을 제공하고 연결함으로써 인프라 준비도를 빠르게 향상시킬 수 있다. 

자사의 성과관리 플랫폼을 활용 중인 한 고객사는 지난 1년간의 사용자 데이터를 기반으로 ONA(Organizational Network Analysis, 조직네트워크 분석)를 비롯한 고성과요인, 이탈 위험 등의 예측적 분석을 시도하고 있다. 이를 통해 진정한 의미의 360도 직원 프로필을 파악하고 민첩한 HR 의사결정에 활용할 것이다. 이러한 기업 특화형 데이터는 글로벌 표준으로 얻을 수 없으며, 따라가려면 최소한 1년을 기다려야 한다. 속도의 격차는 앞으로 더욱 커질 것이다. 

신뢰가 회복력의 차이를 만든다

최근의 팬데믹 일상은 구성원들의 기여와 성장 경험을 제때 포착하지 못하거나, 반대로 무임승차와 같은 부정적 외부효과를 차단하지 못할 위험성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더불어 일과 가정의 경계가 모호해지며 불확실성을 경험한 구성원들의 스트레스는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 작년 한 해 이러한 이유로 70%가 넘는 구성원이 번아웃을 경험했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일상으로의 복귀에 대한 기대와 하방위험이 공존하는 상황에서 HR의 회복력을 강화하기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 한 기업 내에서 사업과 직무, 인재시장, 근무환경의 특성에 따라 초점이 차별화된 복수의 제도를 운영하고자 하는 시도가 많아져야 한다. 이러한 전환은 기존 제도와의 충돌 등으로 고려요소가 복잡함은 물론 선택지도 다양해서 의사결정의 고단함이 동반된다. 

하지만 철학은 단순해야 한다. 변화의 결과가 구성원과의 신뢰를 강화하거나 회복하는 것에 기여하는가에 시선을 고정시켜야 한다. 공정성, 구성원에 대한 배려, 조직의 역량, 나아가 기업의 사회적 책임 등을 강화하는 전환은 신뢰자산을 만들고, 회복탄력성을 높인다. 

HR이 이러한 변화에 집중하고 주도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행정업무나 급여처리와 같이 많은 거래비용을 지불해야만 했던 운영적 업무는 외부 전문화하고, 일터와 인재의 변화를 포착하는데 집중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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