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희의 창의노트]

김광희 협성대 경영학과 교수
김광희 협성대 경영학과 교수

그대의 통찰력을 묻는다.
‘王·中·申·田·亘·米·回·車·非·亞’. 
이 한자의 공통점을 찾아라. 한자 지식을 묻는 게 아니다. 그 외형에만 주목해보라. 결정적 힌트다. 다음 3개의 사자성어 ◯에 들어갈 한자와 공통점을 지녔다.
千萬多◯. 多◯多福. ◯莫◯矣.

헐, 더 지난해졌다고? 이제 풀어보자. ◯에 들어갈 한자는 ‘幸(다행 행)’이다. 千萬多幸(천만다행)은 아주 다행하다는 뜻이고, 多幸多福(다행다복)은 운이 좋고 복이 많다는 것이며, 幸莫幸矣(행막행의)는 더할 수 없을 만큼 다행함을 일컫는다.

幸의 모습은 실로 오묘하다. 아니 신비롭다. 좌우로도 상하로도 대칭이다. 180도 뒤집혀도 의미나 형상이 바뀌지 않는 한자다. 첫머리 한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현재 중국에서 통용되는 한자는 대략 7,000개라는데, 그 가운데서도 매우 독특한 형태다.

幸의 어원에 관해선 여러 설이 존재한다. 하나는, 후한기(後漢期)에 편찬된 한자사전 <설문해자(説文解字)>에선 幸을 ‘夭(일찍죽을 요)’와 ‘逆(거스를 역)’으로 구성된 합자(合字)로 보고 있다. 夭는 일찍 죽는다는 의미, 逆은 진행 상황·방향에 반대되거나 어긋나게 행동하다는 뜻이다. 일찍 생을 마감하는 것과는 반대상황, 즉 천수를 누릴 수 있어 얼마나 ‘다행’하고 ‘행복’한가.

또 하나는, 고대 중국에서 죄인(포로)을 묶는 형구(刑具)의 상형문자라고 한다. 즉, 죄 지은 사람의 신체를 구속키 위한 수갑(족쇄)이란다. 이런 불행의 상징인 수갑이 어째서 ‘행복’과 ‘다행’을 지칭하게 됐을까?

오늘날 죄인에게 신체형을 가하는 경우는 없지만, 인권 개념이 없었던 과거엔 잔혹한 신체형이 흔했다. 죄인의 살과 뼈를 발라내(회 떠서) 죽이는 능지형(凌遲刑)을 시작으로, 사지를 밧줄로 묶어 찢어 죽이는 거열형(車裂刑), 생식기를 자르는 궁형(宮刑), 코를 베는 의형(劓刑), 발뒤꿈치를 자르는 월형(刖刑), 죄명을 신체(얼굴)에 새기는 묵형(墨刑) 등 잔인한 형벌이 존재했다. 제(齊)나라 왕 경공(頃公)이 월형을 좋아한 탓에 시장의 신발가격은 폭락, 의족가격은 폭등했다는 끔찍한 얘기도 전한다.

무도한 시절에도 감방에서 수갑만 찬 채 형기를 채우는 죄인이 있었다. 목숨과 신체 일부를 잃지 않는 대신 수갑을 채워 손쓸 자유만을 앗아가는 형벌은 죄인에겐 더 없이 ‘행복’했다. ‘똥 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입증판이다. 더해 형까지 면해 자유의 몸이 된다면 이 얼마나 ‘행복’하고 ‘다행’한 일인가! 불행·불편한 상태에 처했을 때 비로소 ‘행복’의 가치를 깨닫는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선현은 행복을 어떻게 봤을까? 공자는 행복이 외적 성공이나 물질적 풍족함보단 내적 안정과 도덕적 가치에 근거한다고 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은 나 자신에게 달려 있다.”고 읊었고, 데일 카네기는 “행복은 어떤 외부조건에 달린 게 아닌 내 마음가짐에 좌우된다”고 말했다.

그렇다, 나에게 내재된 행복을 깨닫지 못하면 결코 행복할 할 수 없는 법. 행복은 환경과 상황의 결과가 아닌 오롯이 내 생각(감정)과 행동의 결실이다. 인생을 90살로 잡으면 단 32,850일! 인생이 짧은 드라마라면, 행복은 긴 광고여야 한다. 으쌰으쌰 2024년 초행진강(招幸進康), 최우선으로 내 행복을 써 내려가자. 행복은 권리요, 의무요, 내 존재 이유다. 

저작권자 © 월간 인재경영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