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대 전환의 시대, 초 개인화(hyper personalization)가 사업부서의 화두라면 인사부서의 그것은 무엇일까? 필자는 ‘판단력 양극화’라고 생각한다. 2차 산업혁명이 증기기관으로 인간의 근력을 대체하고 3차혁명이 인간의 손발을 대체했다면 4차 산업혁명에는 판단이 자동화된다는 게 가장 큰 특징이다. 다시 말해, 의사결정의 자동화(Automated Decision Making)가 4차 산업혁명과 디지털 대전환이 그 외 다른 산업혁명과 구별되는 가장 큰 특징인 것이다. 이를 정확히 이해한다면 기업의 생산활동에서 인적자원(Human Resource)이 담당하던 근본적인 역할 변화를 반드시 톺아 봐야 한다. 그래야 인사전략의 큰 그림을 그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게 인사 담당자의 역할이다. 당장 쏟아지는 교육 수요에만 대응할 상황이 아닌 것이다. 그리고 그 관심의 끝은 결국 인적자원의 ‘판단력’을 어떻게 강화하느냐로 귀결될 것이라는 게 필자 주장의 골자다.

증기기관과 현대 교육
가르치는 사람은 앞에 있고, 교육받는 다수가 극장식으로 선생님을 바라보는 형태의 교육은 과연 언제 생겼을까? 이견은 있을 수 있지만 대부분 2차 산업혁명이라고 보는 의견이 다수다. 그 과정을 살펴보면 제법 흥미로운데, 제임스 와트가 완성한 증기기관은 공장을 만들었고, 공장은 모든 엄마와 아빠를 불러들였다. 그 수준이 가히 혁명적이라 집안에 남은 아이들은 급속도로 방치됐다. 인격적으로 영양적으로 육체적으로 심각한 사회 문제가 대두된 것이다. 이때 이 현상을 자신의 일처럼 심각하게 바라보던 집단이 있었는데 성직자도, 정치인도, 인권단체도 아닌 군인들이었다. 왜냐하면 아이들이 지나치게 망가지면 미래 건전한 병력 자원이 줄어드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초창기 근대 교육은 군에 의해 틀이 잡혔고 그때부터 선생님은 여러 아이들을 대량 교육하기 시작했다. 물론 직업과 직무 교육의 필요성 등 더 다양한 경로로 현대 교육은 지금의 원형을 만들어 왔지만, 확실한 한 가지는 혁명적 수준의 기술 발달은 분명 인사전략의 근간을 바꾼다는 것이다. 지금이 딱 그 시기다. 인사담당자들은 생각보다 거시적이고 결연한 마음으로 기술이 바꾸는 인적자원의 역할 변화에 긴장해야 한다.

작업자에서 작업관리자의 시대로
인적자원의 변화 방향성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작업자에서 작업 관리자의 시대로’라고 말할 수 있다. 즉, 생산 현장에서 인공지능과 로봇에 의해 작업자들의 머릿수는 급격하게 줄고 이를 통할 관리할 소수 수퍼 개인만 남게 된다. 그렇다면 사람을 뽑고, 교육하고, 성과를 내게 하는 모든 방면에 이 기조가 녹아들어야 한다. 바로 ‘판단력’이 좋은 인재를 선발하고 성과를 내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극히 당연한 얘기 아니냐 싶겠지만, 2023년 현재 실제 기업 교육 현장의 내용 구성을 살펴보면 대부분 지식과 도구의 사용법 일색이다. 판단하고 논증하고 치열하게 타협하는 조작된 경험조차 주지 못하는 교육이 태반인 것이다. 사람의 모든 역량은 그 종류와 관계없이 크게 하드 스킬(Hard Skill)과 소프트 스킬(Soft skill)로 구분된다. 근래 각광받는 데이터 교육에 빗대 설명하면 R과 파이썬 사용법을 익히는 것이 전자, 필요한 데이터를 추론하고 이치를 따져 설득하는 역량이 후자에 해당한다. 이 둘의 균형이 왜 중요한지를 설명할 때 필자가 가장 많이 드는 예시는 영어 공부다. 2022년 즈음 우리나라는 OECD 국가에서 1인당 영어 사교육비가 가장 높은 수준에 해당하지만, 실제 영어 실력은 최하위권이다. 영어의 궁극적인 목적은 소통인데 우리의 영어 교육은 소통보다는 시험과목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초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16년짜리 우리나라 영어 교육은 집단 기만에 가깝다. 비슷한 맥락으로 “우리나라는 콩쿠르 강국이지 클래식 강국은 아니다”란 말이 있으며, 노동시간은 최상위권, 노동생산성은 최하위권이란 현상도 있다. 3차 산업혁명은 지식정보화 혁명이었고 더 많은 지식을 가진 인재가 더 좋은 인재였던 건 여기까지다. 더 많은 지식을 더 많은 사람들의 머리에 넣어두는 인재개발 방식에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한 것이다. 4차 산업에서는 지식이 급속도로 대중화되고 판단력이 좋은 인재를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염두할 때 앞선 아이러니들은 생각보다 심각한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작업 관리자들을 만들어내는 심층 교육이 필요한 시점인 것이다.

획기적인 두 사건, 맥킨지의 디지털 어세스먼트와 칸아카데미의 칸미고
인재상이 바뀌면 가장 먼저 바뀌는 분야는 평가 영역이다. 평가 방식이 바뀌어야 이를 준비하는 인재들의 변화를 빠르게 유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맥킨지의 2021년 인재 선발방식의 변화는 의미가 크다. 주지하다시피, 맥킨지는 글로벌 경영컨설팅회사다. 전 세계에서 가장 똑똑한 인재만을 뽑는다는 이 회사에 들어가려면 이력서 검토, 필기고사, 약 10번 이내의 면접을 봐야 한다. 혹독하기로 유명한 이 과정 중 PST(Problem Solving Test)라는 필기고사 단계가 2021년 디지털 어세스먼트(Digital Assement) 방식으로 바뀌었다. 이 단계는 모바일 게임과 매우 흡사한 환경에서 지원자의 전략적 사고, 메타인지, 시스템 사고, 비판적 사고를 측정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경영컨설팅회사라고 해서 경영적 의사결정 능력을 평가하기 보다는 자연재해 막기, 연구논문 작성하기 등과 같은 매우 일상적인 소재로 구성돼 있다는 점이다. 또한 지원자들의 결과점수(Product Score)만 측정하는 것이 아닌 과정점수(Process Score)까지 측정한다. 즉, 문제를 잘 해결했는지만 보는 것이 아닌, 문제해결 스타일까지 유형화한다는 것이다. 당연히 교육심리학자, 데이터 과학자, 디지털 전문가가 한 팀이 돼 만들었다. 이 혁신적 방식의 시장 반향은 생각보다 컸는데 바로 이듬해인 2022년 유사한 글로벌 컨설팅 회사들이 일제히 비슷한 방식으로 인재를 선발하기 시작했고 켈로그와 골드만삭스 같은 대기업들도 이에 동참했다. 똑똑한 인재를 뽑아야 한다는 거대한 물결이 시작된 것이다. 만약 이글을 읽으며 ‘똑똑한 사람 뽑아야 한다는 것을 누가 모르나? 방법이 없어 못하는 거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꼭 연구하길 바란다. 산업화 이후 한 번도 공교육 및 기업 교육 시장에서 ‘중요하지만 교육되지 못했던 사고력’이 정면으로 측정되고 관리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각 대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직무적성 검사의 효시가 맥킨지의 PST인점을 감안할 때 몇 년사이 국내 기업사회에도 큰 변화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된다.
또 하나의 거대한 변화는 ‘초 개인화된 교육’시장의 등장이다. 바로 2023년 칸 아카데미의 칸미고라는 서비스 말이다. 칸미고는 아직 북미지역에서만 사용 가능한 문답 기반의 교육 사이트다. 주로 초중고 학생들이 이용자인데 가령 수학 문제를 풀면 챗GPT 기반의 칸미고가 그 아이의 답변에 수많은 문답을 유도하며 가장 개인화된 교육을 실시하게 된다. 정답과 오답의 상태가 아니라, 아이가 정답에 가까워지게 유도하는 게 핵심이다. 최근 글쓰기 등으로 그 서비스 영역을 급속도로 확대하고 있다. 이 서비스는 일명 ‘소크라테스식 문답법’이라는 인류가 가진 교육법 중 가장 위대한 교육법의 대중화를 의미한다. 교육 공급자의 커리큘럼보다는 피 교육자의 지식, 의심, 호기심에 기반해서 가장 개인화된 교육 내용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여러 논문을 통해 높은 교육효과가 증명되고 있다.

맥킨지의 디지털 어세스먼트와 칸 아카데미의 칸미고를 단순히 신박한 평가 및 교육 서비스의 등장으로 이해하면 안 된다. 기술의 발달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는 기업 사회는 높은 수준의 판단력을 가진 인재를 원하고 있다. 그런데 같은 기술의 발달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의 시대를 살아갈 수 있다. 예를 들면 챗GPT의 경우만 봐도 그렇다.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에 비견되는 이 혁신의 도구를 단순히 정보검색도구로 사용하는 개인이 있고 생각동무(Thinking Partner)로 사용하는 사람이 있다. 사실 챗GPT는 추론 엔진이지 검색 엔진이 아니기 때문에 정보를 찾는 데는 적합하지 않다. 즉 기억이 없는 연산 능력만 갖춘 도구인 셈이다. 이런 특성을 잘 이해한다면 오히려 생각동무를 쓰는 게 좋다. 다시 말해, 정보를 구해달라고 하기보다는 ‘필자가 좋은 판단을 하고 있는지를 점검해 줄 수 있는 좋은 비판자’로 쓰는 것을 말이다. 판단력이 좋은 사람들은 ‘비판을 구걸하러 다녀라’란 말을 많이 한다. 즉, 좋은 판단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많은 비판에 노출돼 빚어지는 특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챗GPT에 문제상황과 나의 결정을 동시에 제공하면 나의 생각의 사각지대를 찾아준다. 그게 바로 생각동무다. 즉, 지식이 점차 대중화 돼 가는 시대 챗GPT를 어떻게 사용하는지만 봐도 판단력이 더 좋아지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격차가 점차 가속화 되고 있는 것이다. 더 이상 생각을 안 하려고 쓰는 사람이 있는 반면, 더 좋은 생각을 하려고 쓰는 사람으로 딱 갈리기 때문이다. 챗GPT를 정보 탐색 도구로만 쓰는 사람들은 십중팔구 그 편리함에 안주해 더 이상의 사유과정을 멈추려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이다. 고급 의사결정은 정보의 유무로만 결정되는 게 아니라 얼마나 입체적인 생각을 하느냐에 달려있다는 걸 잊으면 안 된다.

정리해 보자. 기술이 발달하면 그 기술이 초래하는 근본적인 변화에 집중해야 한다. 기업사회는 점점 판단력이 좋은 인재를 원할 것이다. 칸 아카데미나 맥킨지의 시도가 우연이 아닌 것이다. 한데 우리 기업사회는 문제를 발굴하는 감수성, 그 문제는 필자가 풀어야 한다는 사명의식, 해결에 필요한 역량을 지목하고 어떻게 빌려올지를 기획하는 역량을 교육하지 않는다. 그건 경험으로 길러지는 것이지 교육할 것이 아니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다시 한번 맥킨지의 새로운 평가 제도를 살펴보길 바란다. 지식과 부의 양극화보다 더 위협적인 것은 판단력의 양극화다. 어떻게 좁혀야 할지도 막막하고 모든 양극화의 근원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생각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 


글_강양석 딥스킬(Deepskill)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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