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우리 기업조직들은 사람에 대해 기본적으로 호모 이코노미쿠스를 가정하였다. 경제적 행위의 목적은 효용 극대화이고,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인간은 합리성에 근간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서나 애착 같은 요소들이 경제적 행위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더러 있지만 대부분 부차적이어서 인간의 경제적 행위를 명쾌하게 설명하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될 뿐이라고 가정한다. 하지만 인간은 전생애적으로 이성보다 정서를 통한 관계에 보다 깊게 관여하기 때문에 오히려 이 정서적 관계의 우량 정도에 따라 경제적 행위의 선택지를 늘리기도 하고 줄이기도 한다. 경제적 행위의 선택지를 주체적으로 수행하는 것을 사업가 마인드라 부르므로 결국 정서는 이성보다 사업가 마인드와 더 깊은 영향 관계에 있는 것이다. 

사회학자 그라노베터는 대기업에서 실직한 직장인들의 창업 활동 실증분석을 통해 이를 입증했다. 기존 조직에서 비즈니스 중심의 이성적 관계만을 발전시켰던 인원들과 정서적 관계도 함께 발전시켰던 인원들을 비교하면서 어는 쪽이 성공적으로 창업활동을 하게 되는지 연구했다. 그 결과 이전 직장에서 이성적 관계만 발전시켰던 인원들보다 정서적 관계를 함께 발전시켰던 인원들이 창업에 성공적임을 확인하였다. 무엇 때문일까? 좋은 정서적 관계가 사업가 마인드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긍정적 기대와 위험감수 행동을 높여 주었기 때문이다. 

왜 정서관리인가

정서는 어떻게 긍정적 기대를 가지고 도전적 탐색을 감행하도록 만들어 줄까? 
정서는 조직 내 온전한 신뢰관계 형성의 윤활유 역할을 함으로써 긍정적 기대와 도전이라는 풍토를 형성시킨다. 신뢰는 인지적 측면(Cognition-based trust)과 정서적 측면(Affect-based trust) 두 가지를 가지고 있다. 온전한 신뢰란 이 두 측면을 모두 겸비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으나 대부분의 경우 인지적 측면만을 가지고 신뢰로 간주하는 경향이 크다. 아무래도 모든 신뢰 대상에 대해 정서적 관계를 깊이 맺기 어렵고 또 합리성을 강조하는 조직에서 굳이 정서를 강조하거나 정서관계 분위기를 조성할 필요가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통상적으로 신뢰라 했을 때 대상에 대한 정보와 이에 대해 판단하는 인지적 신뢰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인지적 신뢰는 대상에 대한 합리적 정보에 기반하기 때문에, 대상에 대해 인식하고 있던 기존 정보가 잘못된 것임이 드러날 경우 신뢰도 쉽게 무너진다. 하지만 정서적 신뢰는 관련된 객관적 정보뿐 아닌 대상과의 오랜 상호작용을 통해 형성되기 때문에 인지적 신뢰와 달리 설령 신뢰를 거스르는 정보가 확인되었다 하더라도 기존 믿음이 성급하게 철회되는 것이 아니라 지속되는 경향을 띤다. 즉 정서적 신뢰는 인지적 신뢰보다 오래 지속되며 혹시 실패가 있더라도 신뢰자로 하여금 인지부조화를 경험하게 해 대상에 대해 계속적인 신뢰를 가질 수 있도록 한다. 이 때문에 정서적 신뢰는 상호관계나 결과물에 대한 긍정적 기대를 만들고 도전과 실패에 대한 우호적 분위기, 그리고 탐색과 학습에 대한 열망이 형성되도록 촉진한다. 기존 인식으로 보면, 정서적 신뢰가 인지적 신뢰보다 비이성적이고 그에 따라 합리성과 이성에 기반한 건전성을 해친다고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같은 목적과 방향을 가지고 매일 만나는 조직 내 구성원들이 상호 인지적 신뢰로만 연결되어 있다면 과연 관계의 수준, 협업의 질, 팀워크는 어떻게 될까? 복잡하고 애매모호하며 변동성이 크고 예측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 인지적 신뢰에만 의존한다면 그 조직은 척박한 경영환경을 헤쳐 나갈 구성원의 응집력(Cohesiveness)을 담보할 수 있을까?

구성원 정서관리의 실체 : 내적 정서자본을 관리하라

그렇다면 정서관리란 무엇을 어떻게 관리한다는 것인가? 정서자본 개념을 근간으로 관리방안을 살펴보자. 정서자본이란 긍정적 정서를 통해 획득되는 양질의 정보교환 및 상호지지와 후원 등을 무형의 사회적 자본으로 간주하는 개념이다. 이러한 정서자본은 외적인 정서자본과 내적인 정서자본으로 구분된다. 외적인 정서자본은 기업의 외부이해 관계자, 즉 고객과 자본 투자자들이 기업에 대해 가지는 정서로, 브랜드 가치나 기업 신뢰로 표현되기도 한다. 내적인 정서자본은 구성원들이 회사나 조직에 대해 가지는 정서를 일컫는 것으로 구성원들의 도전정신, 회사에 대한 애착심, 성과달성에 대한 열정 등으로 표현된다. 내적 정서자본은 회사와 업무에 대한 구성원들의 태도를 형성한다는 측면에서 기업과 조직에 매우 중요한 자본이 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많은 조직에서 정서가 자본으로 인식되지 못하고 오히려 평가절하 되어 있는 상황이다. 내적 정서자본은 다음 네 가지 영역 모두에서 실질적으로 관리되어야 한다. 

1. 진정성(Authenticity) 관리
정서자본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조직의 진정성이다. 진정성이 높다고 인식되면 정서자본의 나머지 세 가지 요소는 이 진정성을 자양분 삼아 발달하게 된다. 반면 진정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면 정서자본을 구축하려는 조직의 노력 일체는 속임수로 간주된다. 진정성을 확보하려면 조직과 리더들의 언행일치가 핵심이다. 조직이 지향하는 바는 보통 경영원리, 리더십 원칙, 행동규범 등의 표현으로 조직 내외에 공언된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 목격되는 리더들의 메시지와 의사결정 기준이 이러한 경영철학과 일치하지 않는다면 진정성은 빠른 속도로 파괴된다. 
지난 2018년 11월, 전 세계 구글 직원들이 업무 수행을 거부하고 대규모 가두 시위를 벌였다. 도쿄에서 시작된 시위는 하루 만에 전 세계 50개 도시, 2만 여명의 구글 직원들이 참여하는 시위로 확산되었다. 구글 직원들이 대규모 집단 행동에 나선 직접적 이유는 고위 임원의 성 추문 사건 때문이었다. 성희롱 사건에 연루된 고위 임원이 9천만 달러의 퇴직금을 받았고, 회사는 해당 사건을 축소, 은폐하려 했다는 사실이 폭로되면서 직원들의 집단 행동이 촉발된 것이다. “나쁜 짓을 하지 않고도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자”라는 구글의 행동 강령(Don’t be Evil)이 훼손되고 있는 것에 대한 구성원의 문제 인식이 표출된 것이었다. 리더는 걸어다니는 경영철학이다. 그러기에 진정성 확인의 바로미터는 리더십이 될 수밖에 없다. 

2. 자부심(Pride) 관리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과 업적을 인정받았을 때 자부심을 느낀다. 이러한 자부심은 미래에 지속적으로 무언가를 성취하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역할을 한다. 금전적 보상과 승진이 동기부여에 있어 나름의 역할을 하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이 자부심을 만들지는 못한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속한 커뮤니티에서 무의도식하지 않고 공동체에 의미 있게 기여하고 있다는 존재감을 만끽하고 싶어한다. 진정한 자부심은 공동체 내에서 자신의 존재감이 충만할 때 나온다. 나의 존재감이지만 타인에 의해서 확인되고 인정되어졌을 때 비로소 내 것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조직이라는 목적 공동체로부터 그 목적에 부합하는 기여를 하고 있음이 인정된다면 자신의 존재감은 공동체 내에서 자부심으로 치환된다. 그러기에 자부심을 만드는 직접적인 장면은 바로 조직과 리더의 인정에서 시작된다. 
그렇다면 조직구성원들은 무엇으로 조직과 리더의 인정을 인식할까? 바로 평가다. 대부분의 조직이 평가제도 정비에는 늘 정성을 다한다. 하지만 자부심 메커니즘으로서 평가가 가지는 의미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해서인지 실상은 기술적 측면에서의 제도 업그레이드에만 집중하며 헛심을 쓰는듯하여 안타까운 모습이다. 이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평가에 대한 철학이 본질적으로 고민되어야 한다 - ‘우리 조직은 평가를 통해 구성원의 자부심을 고양하고 있는가, 아니면 평가로 인해 좌절과 분노를 양산하고 있는가?’ 평가를, 업무결과에 대한 효율적 서열매기기(Ranking) 수준에서 활용하고 있다면 답은 후자에 더 가까울 것이다. ‘왜 구성원을 평가하는가’라는 본질적 물음을 묻는 것이 제도 손질보다 더 먼저다.

3. 애착(Attachment) 관리
우리는 공통의 가치와 관심사를 가지고 있는 커뮤니티에 속해 있다고 느낄 때 자신이 하는 일, 함께 하는 동료, 그 조직에 애착을 느낀다. 개인 관점에서 봤을 때 가치있게 느끼는 관심사는 흥미, 강점, 삶의 지향점 등이다. 조직 관점에서는 사명, 비전, 핵심가치, 사업전략 등이 된다. 흥미, 강점, 지향점을 구성원 의미체계로, 사명, 비전, 핵심가치, 사업전략을 조직의 의미체계라 표현해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의미있는 것에 애착을 갖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가장 이상적이게는 구성원 개인의 의미체계와 조직의 의미체계가 일치하는 것이다. 그럴 경우 애착 순도율 100%가 된다. 조직의 관심사가 곧 내 관심사니 주인의식과 몰입은 자연스레 뒤따른다. 당연히 좋은 성과로 연결될 확률도 높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대부분의 조직에서 이 두 의미체계는 긴장 상태에 있다. 긴장을 넘어 충돌 상태에서 갈등을 빚고 있을 수 있다. 따라서 관건은 이 두 의미체계를 창조적으로 융합할 수 있는가에 있다. 구성원들이 의미있게 생각하고 있는 바, 즉 흥미, 강점, 지향점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이를 조직이 의미있게 생각하고 있는 바, 즉 사명, 비전, 핵심가치, 사업전략과 어떻게 생산적으로 연결시킬 수 있을지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특히, 이제 구성원의 대부분인 MZ세대들이 일의 의미를 직장 선택의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간주하고 있음을 고려했을 때 이 두 의미체계의 공감도와 합치도를 끌어올리는 노력은 구성원의 애착을 만드는 가장 본질적인 해법이라 할 수 있다. 

4. 재미(Fun) 관리
의미있고 가치있는 있는 일이어야 하지만 또 재미있고 봐야 한다. 재미가 있을 때 긴장이 이완되고 불안이 내려가며 두려움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재미는 자율성, 새로움, 실수나 실패에 대한 안전감을 기반으로 한다. 게임에 열광하게 되는 이유는, 게임을 하는 동안만큼은 게임이 제시하는 세계관 안에서 온전한 자율을 누리고 새로운 탐색과 실험을 자유로이 해 볼 수 있으며 비록 실패하더라도 리셋(reset)이 가능해 안전감이 담보되기 때문이다. 물론 현실 조직에서 게임처럼 재미의 모든 요소를 완벽히 누릴 수는 없다. 하지만 재미가 주는 말랑말랑함(Wet-brain)이라는 효익을 포기할 수 없다. 조직의 모습을 재미요소만으로 꾸릴 수 없다 하더라도 조직 내 재미를 반감시키는 요소를 찾고 이를 저감하기 위한 노력은 할 수 있다. 가장 주요한 하나가 바로 질책풍토 개선이다. ‘직원들이 잘못하면 꾸짖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리더가 아직 많다. 잘못했을 때 제대로 꾸짖어줘야 자신의 행동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인식시킬 수 있고, 발전의 계기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진짜 그럴까? 리더가 질책하면 구성원들은 다음 두 가지 방법 중 하나를 택하게 된다. 첫 번째는 변명을 하거나, 잘못을 다른 이유로 돌린다. 이른바 회피 반응이다. 둘째는 잘못했다고 빠르게 인정하고 순응해 조직으로부터의 퇴출 위협을 최소화한다. 안타깝게도 두 반응 모두 조직의 발전에는 별반 도움이 되지 않는다. 책임을 회피하는 문화에서 실수나 실패의 원인을 분석하고 대안을 마련하는 학습이 일어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더욱이 주체적으로 탐색하여 시도하고 실수와 실패로부터 배우는 재미를 느끼기는 사실상 불가하게 된다. 일터에서의 재미를 논하려면 질책하는 풍토부터 바꿔야 한다. 

찐 관리 대상은 정서

많은 기업이 유니콘 기업의 DNA를 이식하고 싶어 한다. 조직이 커지고 오래될수록 긍정적 기대, 도전과 실험 풍토, 사업가 마인드가 휘발됨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이를 막기 위해 조직을 작게 나누거나 위계를 줄여 수평화하고 구성원에게 권한위임을 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여 오고 있다. 하지만 그 효과가 그리 만족스럽지는 않아 보인다. 왜일까? 

메릴랜드 대학의 벤자민 슈나이더 교수 연구에 따르면, 리더들이 구성원의 정서적 측면에 유의하여 리더십을 발휘할 경우 구성원들의 성과가 3%에서 4% 정도 향상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 결과는, 조직을 작게 나누거나 위계를 줄이고 수평화하며 구성원에게 권한위임 하는 등의 조치를 통제한 상태에서 얻은 것이다. 즉, 순수히 정서관리를 통해 성과관리를 한 셈이다. 

미래지향적 경영관리의 본질은 어디서 찾아야 맞을까? 
정서가 사람과 조직에 대해 가지는 영향력을 제대로 이해하고 이를 조직의 윤활유가 되도록 만드는 것에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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